호서정맥(신산경표)이란
호서정맥에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인 상당산성. <사진 김영선 객원기자> “왜 금북정맥이 아닌 호서정맥인가?”에 대한 답을 할 차례다. <산경표>는 금북정맥을 경기도 안성 칠장산에서 갈라져 나와 충남 땅을 휘돌아 태안 안흥진에서 맥이 끝나는 산줄기라 했다. 그러나 이 산줄기는 정확한 금강 북쪽의 산줄기가 아니다. 산자분수령의 원리에 따라 산줄기를 구획하면, 금북정맥에서 남쪽으로 발원한 모든 계곡물은 금강에 가 닿아야 한다.
그러나 기존 금북정맥은 청양 백월산을 지나며 금강을 구획하는 산줄기이기를 포기하고 북쪽의 가야산으로 방향을 틀어 태안에서 끝난다. 백월산 이후의 계곡물은 금강에 가 닿지 못하고 서해로 바로 흘러간다. 강을 나누는 정확한 정맥은 백월산에서 북쪽이 아닌 남쪽으로 가는 산줄기인 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산경표의 오류’라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산경표에는 ‘생활권의 경계’라는 또 다른 원칙이 있었다. 백월산 북쪽에는 가야산(678m)이라는 내포지방을 대표하는 명산이 있고, 남쪽 산줄기에 비해 산의 세력이 크다. 즉 생활을 나누는 경계가 된다고 본 것이다. 산경표는 지형만 본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통이 불편해 산줄기가 장벽이 되던 조선시대의 얘기다. 현재 사람들의 삶을 기준으로 본다면 산은 더 이상 생활권의 장벽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신산경표는 ‘조선시대 생활권의 경계’라는 부수적인 원칙을 버리고 오로지 지형적 원리, 즉 ‘산자분수령’에만 의해 산줄기를 이어 금북정맥이 아닌 호서정맥을 제안했다. ‘산은 물을 가르는 경계’라는 지형적 원리를 철저히 지켜 청양 백월산에서 남쪽으로 가는, 금강을 만든 진짜 어미 산줄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누가 더 잘생겼고, 누가 돈이 더 많고 하는 부수적인 것들을 배제한 채 기본 원칙만으로 인사를 단행한 셈이다. ‘돈 없고 백 없는’ 인물들의 능력만 평가해 제대로 된 인사를 단행한 것이 신산경표의 호서정맥이다.
“한남금북정맥을 왜 없앴는가?”에 대한 답을 할 차례다. <산경표>의 한남금북정맥은 이름처럼 한남정맥이며 동시에 금북정맥이다.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갈라져 나와 충북 땅을 휘돌아 경기도 안성에서 두 개의 산줄기로 갈라진다. 안성 칠장산에서 남쪽으로 갈라진 것이 금북정맥이고, 북쪽으로 갈라진 것이 한남정맥이다. 금강 북쪽 산줄기와 한강 남쪽 산줄기로 갈라지는 것이다.
한남금북정맥은 독립된 정맥이 아닌 겹친 산줄기다. 독립된 개별 정맥이 되려면 우리나라 10대 강을 하구까지 이어가며 강의 시작과 끝을 함께해야 한다. 강의 시작부터 하구의 힘찬 강물 끝까지 함께하는 진정한 부모 역할을 해야 정맥임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한남금북정맥은 내륙의 산줄기라 강줄기의 끝까지 함께 가는 진정한 정맥은 아니다. 한남금북을 개별 정맥으로 인정하면 산경표의 기본 원칙과 상식이 무너지게 되는 셈이다. 기존 산경표 역시 한남금북을 개별 정맥이라 여기기보다는 ‘한남에도 속하고 금북에도 속하는 산줄기’란 의미로 ‘한남금북’으로 분류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런 이유로 <신산경표>는 한남금북정맥을 기존 정맥에 편입시켜 ‘호서정맥’이라 이름 붙였다. 금북정맥이라 이름 붙이기엔 한남금북의 북쪽 기슭 계류들이 한강 남쪽으로 흘러가고 있어, ‘호서지역의 정맥’이란 뜻의 호서정맥이라 했다. 금남호남정맥도 이와 같은 이치로 신산경표에서는 개별 정맥에서 제외했다. 이렇게 한남금북정맥과 금남호남정맥을 기존 정맥에 포함시켜 1 대간 9 정맥이 아닌 1 대간 7 정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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